사료 그릇서 개 발바닥·뼛조각이…지옥의 '불법도축 현장' [르포]

입력 2023-06-15 13:28   수정 2023-06-15 14:37


경기 시흥시의 한 작은 산속 마을 한 농가에 12일 밤 9시경 동물단체 활동가 20여명과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소란이 벌어졌다. 개를 불법으로 도살하는 현장을 적발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경찰이 전기 충격기를 써 개를 불법으로 도살하는 소리 등 정황을 파악한 후 농가로 진입하자, 마스크 없이는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농가 안에는 다 큰 진돗개 크기의 누런 색 개 3마리가 쇠 선반 위에 목이 베인 채로 죽어 있었다. 선반 밖으로 나와 있는 이들의 머리는 흐르는 피를 담기 위해 놓인 페인트 통을 향해 있었다. 페인트 통은 이미 수차례 사용된 듯한 흔적이 보였고,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개 십여마리 갇힌 철창 앞서 개 도살
사료 그릇·쓰레기봉투서 개 발바닥·뼛조각 나와
이날 경찰과 공동으로 대응에 나선 동물단체 카라와 KK9R에 따르면 이 도살자는 개 식용 업계의 '큰 손'으로 불리는 한 상인에게 이날 오후 개를 넘겨받고 밤 9시경 도살에 들어갔다. 통상 개 도살 시간은 모두가 퇴근하거나 잠자는 시간에 이뤄진다. 시간대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날처럼 늦은 밤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고 새벽 서너시에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이밖에 농가 내부에서 또 다른 사체 10여마리가 추가로 발견됐다.



죽은 개들 앞 불과 1~2m 거리에는 성인 무릎보다 조금 안 되는 높이와 흔히 사용하는 책상 정도 크기의 작은 철창에 개 서너마리가 '대기 중'이었다. 그 오른쪽에는 보다 큰 철창이 있고, 십여마리의 개가 또 있었다. 동물보호법상 잔인한 방법을 쓰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개들은 머리와 꼬리를 모두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개들이 주눅 들거나 겁을 먹었을 때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동이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는 견공들 사이로 서너마리만 철창을 지키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보고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었다.

죽은 개들이 놓인 쇠 선반 좌측엔 털을 뽑는 드럼통 크기의 원형 기계가 있었다. 그 아래로는 각종 색의 개털이 엉겨 붙어 있었다. 몇 마리의 개들이 이 기계를 거쳐 갔을 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털이 쌓여 있었다. 주변에는 개고기 손질 등을 위한 큰 세숫대야, 망치 등 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동물단체 활동가들은 "머리 근육이 경직되기 전에 아이들을 제대로 눕혀 달라"고 도살자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모자를 눌러쓴 도살자는 "손대지 말라"며 크게 소리쳤다. 부인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은 집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처럼 불법 도축은 부부가 함께하거나, 동네 친구들과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동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던 중 큰 철창살을 바라보던 한 활동가 입에서 비명이 나왔다. "저게 뭐야?" 사료 그릇에서 언제 죽었을지 모르는 개의 발바닥과 발바닥 패드가 나온 것. 농가 바로 밖에서 발견된 빨간 쓰레기봉투 안에서도 개 발바닥 등 부패한 개 사체 일부와 뼛조각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이곳에서 세 가지만 빼고 모든 것이 개털로 가득해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모습이었다. 6월로 펼쳐진 달력, 아직 쓰이지 않은 검고 흰 비닐봉지들, 몇 병 안 남은 박카스 박스만이 빤질빤질하게 새것같이 깨끗했다.
계산기 두들기다 포기한 도살자
이러한 모습에 격앙된 동물단체와 생업이 도마 위에 오른 도살자 간 대치가 길어지던 중 민원을 접수하고 출동한 시 동물보호 담당 관계자가 현장에 나타났다. 동물보호법 34조에 따르면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은 동물 학대 등에 해당하는 동물을 발견할 때는 치료·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학대 재발 방지를 위해 학대 행위자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이렇게 격리 조치된 개들은 시 보호시설에서 치료 등을 받은 후 소유자가 사육계획서를 제출하고 보호기간 발생한 비용을 부담해야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 통상 식용 개로 끌려온 개들은 상태가 좋지 못해 치료 및 보호 비용, 인건비 등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도살자가 지불해야하는 돈이 많게는 수백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유통업자에게 사 온 금액을 수배 웃도는 금액을 지급해야만 개를 데려올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도살자는 소유권을 포기하고 시나 동물단체에 소유권을 넘기곤 한다.

시 관계자과 경찰은 도살자에게 위반한 법령과 앞으로 거치게 될 과정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개들은 시 보호소에 가게 됩니다. 그러면 비용이 발생해요. 한 마리당 거의 10만원." 차분하게 설명하는 시 관계자의 말에 그는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얘네 밥값보다 돈이 더 드는데…제가 언어 장애도 있고, 군대 가서 파편을 맞아서 질환도 있어요. 돈 갚을 여력도 안 되는데…가져온 개를 유통한 사람한테 반납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 한 경찰 관계자가 타이르듯 "이제 다 내려놓으셔야 해. 협조하시고 선처를 바라는 게 최선이에요.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거지만 서로 좋게 하기 위해 그렇게 안 하는 거예요"라고 설득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도살자에게 카라 관계자는 "이제 이 일 더 안 하시겠다면서요. 저희한테 소유권을 이전하세요. 좋은 환경으로 입양 보내겠습니다"라며 소유권 이전 서류를 내밀었다.

그렇게 도살자가 서류에 서명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농가 진입 약 2시간 반 만이다. 동물단체 측은 개를 운반할 켄넬을 가져와 한 마리씩 꺼내 농장 밖으로 이동시켰다. 수의사와 보조 활동가들이 케이지를 돌며 개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거의 한 시가 다 돼서 현장을 떠난 활동가들은 "일찍 끝나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상 행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시도의 관계자가 도착해야 상황이 끝나는데 많게는 온종일이 걸리는 지자체도 있다는 것. 그마저도 보호조치나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면 다행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카라 관계자는 "시 담당자와 경찰관분들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응과 설득으로 생존견들을 빠르게 구조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살아 떠난 24마리…쓰레기봉투에 남은 죽은 이들
그렇게 구조한 생존견은 24마리. 이 중 한 마리는 만삭견이었다. 검진 결과 뱃속에는 6마리의 새끼가 있었고, 출산 예정일은 2주 후였다.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임신 중기의 어미견, 파보 바이러스 장염 감염 등이 파악된 개도 3마리나 나왔다. 이들 모두 치료 후 입양을 위한 절차를 밟게 된다.

도살자는 개들이 농가를 모두 빠져나오자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개들이 갇힌 켄넬을 한참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이후 아무 말 없이 그는 산 너머 가장 밝은 곳을 응시하다 농가로 다시 들어갔다. 상황을 정리하던 관계자들은 "끝까지 '배째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늘은 그래도 잘 정리된 거 같다"고 귀띔했다.


생존견 24마리는 동물단체의 중대형 트럭에 옮겨져 이곳을 떠났다. 살아서 나간 이들이 트럭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본 농가의 풍경은 조각조각 난 개 사체와 뼛조각이 나온 쓰레기 더미였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동물보호법 10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는 금지된다. '잔인한 방법',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 등을 명시하며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한 기존 동물보호법에서 한층 강화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란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 ▲다른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허가, 면허 등을 받는 경우 ▲다른 법률에 따라 동물의 처리에 관한 명령, 처분 등을 이행하기 위한 경우다. 이를 제외한 모두 학대에 해당해 처벌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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